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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날은간.. | 17/05/16 23:32 | 추천 56 | 조회 4432

[단편] 나는 그녀의 불임을 몰랐다. +422 [10]

오늘의유머 원문링크 https://m.todayhumor.co.kr/view.php?table=bestofbest&no=333265


내가 그녀에게 청혼했던 날, 그녀는 자신의 파혼 경험을 고백했다.

그녀에게 파혼 경험이 있었다는 것은 내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과거의 일 때문에 그렇게나 좋은 여자를 놓칠 만큼 난 어리석지 않았다.
문제는, 며칠 뒤에 그녀가 울면서 고백한 파혼의 이유였다.

" 오빠 미안해.. 사실 나 불임이야. 오빠 애를 낳고 싶은데, 애를 낳을 수가 없어.. "

그 말에는 나도 동요를 숨길 수 없었다. 아이가 없는 가정을 상상해본 적이 없었으니까.
그러나 나는 빠르게 나를 다잡았다. 그녀가 없는 세상은 더 상상할 수 없었다.
나는 얼른 그녀를 안아 토닥였다.

" 울지마. 뭐가 미안해? 네 잘못이 아니야. 괜찮아. 나는 너만 있으면 돼. "
" 미안해 오빠.. 고마워 오빠.. "
" 괜찮아 괜찮아.. 그동안 마음고생 많았지? 괜찮아 괜찮아.. "

그녀는 지난 며칠간 너무나 무서웠었다고 했다. 또다시 파혼을 당할까 봐 겁이 났었다고 했다.
그녀의 그런 모습을 보면서 난 내가 그녀의 아픔을 지켜줘야 함을 느꼈다.
하지만, 내 첫 행보는 실수였다.

" 이 결혼 다시 생각해보거라. "

내가 아는 부모님은 정말 좋은 분들이었다. 또 나만큼이나 그녀를 좋아하는 분들이었다.
그분들께 사실을 알린 것은 명백한 내 실수였다. 결혼식이 끝날 때까진 절대 비밀로 했었어야 했다.
나는 두 분이 그녀의 아픔을 함께 달래주실 줄 알았지만, 내 부모님은 어디까지나 나의 부모님이었다.
부모님을 설득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 저는 그녀를 사랑해요. 제겐 그것만이 가장 중요해요. "
" 안 된다. 다 네 인생을 위해서다. 자식은 꼭 있어야 해. "
" 아이는 나중에 입양하면 돼요! "
" 남의 자식이랑 네 자식이랑 똑같은 줄 아느냐?! 절대 안 된다! "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인연을 끊는 한이 있더라도 강제로 결혼식을 올리려 했지만, 그녀는 반대했다.

" 난 그런 결혼하기 싫어..내가 포기할게 오빠. 괜찮아, 난 두 분 마음 이해해. 몸에 하자 있는 내가 잘못이지.. "
" 그런 소리 하지 마! 내가 어떻게든 할 테니까! 응? "

나는 하룻밤을 꼬박 빌어보기도 하고, 인연을 끊자며 버텨보고, 차라리 죽겠다며 협박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부모님의 생각은 완고했다.
나는 궁리했다. 어떻게 해야 부모님의 마음을 바꿀 수 있을까?
내가 내린 답은 근본적인 부분에 있었다.
내가 아닌, 그녀가 부모님의 마음을 움직여야 했다.

나는 그녀를 우리 집으로 데려가면서 미리 사과했다.

" 미안해. 힘들고 괴롭더라도 참아줘. 난 널 포기할 수 없고, 너도 날 포기하지 않을 거라고 믿어. "
" 오빠.. "
" 네가 좋은 사람이란 걸, 포기할 수 없는 사람이란 걸, 부모님께 보여줄 거야. "

힘든 일이라는 걸 알면서도 나는 그녀를 부모님 앞에 내놓았다.
살갑게 대해주시던 어른들의 돌변한 태도는 그녀에게 고통이었을 것이다.

" 미안하지만, 우리 아들을 정말 사랑한다면 네가 놓아줘라. 내가 이렇게 부탁한다. "
" 너도 입장 바꾼다면 우릴 이해할 거다. 어느 부모가 애도 못 낳는 여자를 며느리로 들이겠느냐? "

그녀는 고맙게도, 그 모든 것을 감수했다. 어떤 모진 말을 듣더라도 참았다.
그녀는 며칠간 우리 집에서 생활했다. 집안일을 하면서 부모님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애썼다.
날이 갈수록 부모님의 말투는 더 욕되고 거칠어졌지만, 그녀는 그 모든 걸 참아냈다.
한번은 부모님도 답답한 듯이 물었다.

" 허허! 얘야, 너도 남의 집 귀한 딸이 아니더냐? 왜 여기서 이런 대접 받으면서까지 이러고 있느냐? 너는 자존심도 없느냐? "

그때 그녀의 대답은 내 눈시울을 붉어지게 했다.

" 오빠한테 미안해서 그래요.. 이런 병신같은 여자를 포기 못 한다는 오빠한테 너무 미안해서, 자존심 같은 건 생각도 못 해요. "
" ... "

지난 보름간 한결같던 그녀의 마음은 결국, 부모님의 생각을 돌려놓았다.

" 그래, 결혼하거라. 너처럼 좋은 며느리를 놓친다면 우리가 바보 소리를 듣겠구나. "
" 그동안 정말 미안했다. 용서해다오.. "

" 어머님...아버님...! "

그녀는 정말 펑펑 울었고, 아버지와 어머니도 이젠 그녀의 아픔을 보듬어주었다.

" 그동안 심한 말 해서 정말 미안했다. 네가 무슨 잘못이 있겠느냐? 오히려 가장 괴로운 것은 너일 텐데... "
" 괜찮다 괜찮아. 이놈 말대로 입양해도 되는 거고..괜찮다 아가야. 네 잘못이 아니란다. "

" 감사해요...! 정말 죄송하고 감사하고...! "

한바탕 눈물 파티를 벌인 뒤. 나는 부모님의 명대로, 장인장모님께 사과를 드리러 떠났다.

도로를 달리는 길, 조수석의 그녀는 아직도 퉁퉁 부은 눈을 닦아내고 있었다.

" 미안해..그동안 고생 많았지? "
" 아니야.. 이런 날 받아주셔서 내가 고마워.. "
" 네가 어때서! 넌 세상 최고의 신붓감이야. "

그녀는 정말 천사 같은 여자였다. 난 그녀가 다시는 불임 때문에 고통받지 않게 해주겠다고 다시 한번 다짐했다.

장인장모님을 뵙자마자, 무릎 꿇고 사죄드렸다.

" 죄송합니다.. 어떻게든 이 결혼을 하고 싶어서... 정말 죄송합니다! "
" 아닐세.. 이해하네. "
" 김서방 됐네! 일어나게. 백숙해놨으니까~ "

너무 쉽게 받아주시는 두 분의 모습에, 나는 가슴이 찔렸다. 그동안 자존심이 상하실 법도 한데, 연락 한번 안 하셨던 그 배려가 생각나서 더욱 죄스러워졌다.
반드시 잘하리라 다짐했다.
곧, 장모님은 부엌으로 향했다.

" 김서방 조금만 기다리게. 금방 저녁 차려줄 테니까. 얘, 넌 와서 저녁 차리는 것 좀 도와줘. "
" 응 엄마. "

그녀가 장모님과 편하게 웃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편해졌다.
장인장모님께도 용서받고, 이젠 정말 모든 일이 해결된 기분이었다.

" 수고가 많았네 김서방. "
" 아- 아닙니다. 죄송할 뿐입니다. "
" 아닐세. 솔직히 난 김서방이 고맙네. 우리가 한 번 파혼 경험이 있으니.. "
" 아뇨아뇨! "

나는 손사래를 쳤지만, 장인어른의 얼굴은 진심이었다. 그 얼굴에 담겨있는 아픔을 보며, 장인장모님도 참 힘드셨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불임이라는 몹쓸 병이 이 가족을 얼마나 고통 속에 살게 했을까? 나는 아마 상상도 못 할 것이겠지.

나는 일부러 표정을 밝게 했다.

" 이젠 정말 아무것도 문제 될 게 없습니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저희 부모님도 혜화를 환영하고, 또 불임 같은 건 전혀 신경 쓰지 않으신다고 몇 번이나 그러셨습니다. "
" 그런가? "

한결 표정이 편안해진 장인어른은 고개를 끄덕였다.
한데, 이어진 장인어른의 말은 내 표정을 바꿔놓았다.


" 다행이야.. 그리고 미안하네. 내가 막았어야 했는데.. 저것이 불임수술을 받겠다고 설칠 때, 무슨 수를 써서라도 막았어야 했는데 말이야. "

" 불임수술...? "

나는 동요했다. 그러고 보니, 그녀에게 한 번도 물어본 적이 없었다. 왜 불임이 된 거냐고. 무슨 사고가 있었던 거냐고.
설마, 그녀가 직접 불임이 되는 수술을 받았을 줄이야?
머리가 복잡했다.

나는 그녀를 달리 봐야 하는 건가? 아니면, 그녀를 동정했던 것을 사과해야 하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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