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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deality.. | 24/07/15 14:37 | 추천 13 | 조회 112

한국전쟁 때 여기를 빼앗겨서 김일성이 3일이나 통곡했다는 곳  +112 [1]

루리웹 원문링크 https://m.ruliweb.com/best/board/300143/read/66859217

바로 철원평야, 즉 철의 삼각지대 (Iron triangle) 되겠습니다.


철의 삼각지대는 아래의 철원과 김화 위의 평강을 꼭지점으로 하여 잇는 삼각형의 지역을 말하며 한국전쟁 때 유엔군 사령관 리지웨이가 처음 이름을 붙여 유명해진 곳입니다.


왜 이런 명칭이 붙여졌냐면 여길 차지하면 방어와 공격에 유리하고 차지하지 못한 쪽은 불리한 지형적 특성을 지니고 있으며 천연 요새의 기능을 하기 때문입니다.


철의 삼각지대의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곳은 바로 철원평야 (일명 남자들에게는 철베리아로 유명)이며 한반도 중부에서 몇 안되는 드넓은 곡창지대라 쌀이 많이 나고 철원쌀은 실제로 맛이 뛰어나기로 소문이 날 정도입니다.


철원평야는 전역이 38도선 이북으로 한국전쟁 이전에는 북한의 영토였으나 한국전쟁으로 새로 그어진 군사분계선이 중부와 동부에서 38도선보다 35km 이상 북쪽으로 전진한 덕분에 대부분 대한민국의 영토가 되었으며 현재 철의 삼각지대의 약 60%는 대한민국이 약 40%는 북한이 차지하고 있습니다.


김일성은 한국전쟁 중 철원평야 대부분을 빼앗기자 고암산 (일명 김일성고지)에 올라가 3일을 통곡하고 식음을 전폐했다고 하는데 이는 철원평야가 드넓은 곡창지대로 농업에 유리하기 때문에 여기를 빼앗긴 것은 북한에게 매우 큰 치명타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아래는 소이산에서 바라본 고암산이며 산명호저수지 뒷편에 빨간색 화살표입니다. 고암산은 북한 철원군과 평강군의 경계에 위치하며 바로 우측에 봉래호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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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김일성이 저렇게 밤새고 먹지도 못할 정도로 통곡한 이유는 철원평야가 단순한 곡창지대고 쌀이 많이 나는 것 때문만이 아니며 더 큰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바로 교통의 교차로이며 군사적으로 엄청난 요충지이기 때문으로 여기를 가지냐 빼앗기느냐에 따라 서울 공격이 매우 쉬워지느냐 아님 불가능해지느냐를 좌우하는 열쇠이기 때문입니다.


아래는 철의 삼각지대를 중심으로 하는 통로들을 표시한 지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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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지도를 보면 철의 삼각지대를 중심으로 여러 통로들이 모이고 또 여러 통로들이 나뉘고 갈라지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는 이 곳이 교통의 교차로로 매우 중요하다는 의미가 되며 실제 삼국시대부터 전략적 요충지로 기능해왔고 후삼국 때는 궁예가 태봉의 수도로 삼을 정도였습니다.


철의 삼각지대를 중심으로 하여 교통로들은 다음과 같이 갈라집니다.


1. 남쪽 방면: 3번 국도 (연천-동두천-양주-의정부), 43번 국도 (갈말-영평-포천-의정부), 47번 국도 (김화-이동-일동-진접) 을 통해 서울로 향합니다.


2. 남동쪽 방면: 5번 국도를 통해 말고개 or 수피령을 넘어 화천을 지나 춘천, 홍천, 원주로 향합니다.

(실제 고구려가 백제, 신라를 향해 남진할 때 이 경로를 항상 활용하였으며 한국전쟁 개시 때에도 북한은 이 경로를 이용해 춘천 축선에서 남침했습니다)


3. 북동쪽 방면: 김화-금성-창도를 거쳐 각각 회양, 철령을 넘어 원산으로 가는 경흥로와 창도에서 갈라져 내금강까지 가는 금강산선이 갈라집니다.


4. 북쪽 방면: 경원선로 즉 추가령 구조곡을 따라 평강에서 추가령을 넘어 고산, 안변, 원산으로 향합니다.

(실제 추가령 구조곡은 서울에서 동해안으로 가기 가장 지형적으로 편한 길이며 이 추가령을 기준으로 낭림산맥과 태백산맥이 나뉩니다.)


5. 서쪽 방면: 철원에서 서쪽으로 안협을 거치고 임진강 건너 황해도 토산으로 진입해 황해도 남동부의 사각지대를 (한포리, 시변리, 침교리, 평산) 만납니다. 이 사각지대에서 경의선 축선과 만나 봉산, 사리원, 평양으로 가는 경로와 신계, 수안, 연산을 지나 동평양으로 가는 경로가 서로 갈라집니다.


그 외 평강에서 마식령, 아호비령 산맥을 관통해 이천, 지하리를 지나 신계로 가는 보조 경로가 있으나 지형이 험합니다.


아래는 소이산에서 바라본 철의 삼각지대의 북부 즉 평강고원입니다. 저 멀리 검불랑이 보이며 추가령 직전 좁아지는 계곡까지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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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소이산에서 서쪽 방면으로 바라본 풍경입니다. 철원에서 안협, 토산을 통해 황해도로 가는 동서 축 통로를 한눈에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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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위를 정리하면 철의 삼각지대 즉 철원평야는 아래의 군사적 특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1. 여러 통로가 모이고 여러 통로가 갈라지는 곳이라 교통의 요지입니다.


2. 이 곳을 차지한 쪽은 공격과 방어에 모두 유리하고 차지하지 못한 쪽은 공격과 방어에 모두 불리합니다.


3. 서울, 경기와 관북을 잇는 남북 방향의 통로와 영서와 해서, 관서를 잇는 남동-북서 방향의 통로가 서로 교차합니다.


4. 드넓은 평야지대가 펼쳐져 있고 주위가 고지로 둘러싸인 곳이라 병력과 군사 물자의 대규모 집결에 적절합니다.


5. 북한이 여기를 가지게 되면 서울로 향하는 남북 방면 통로 3개와 춘천, 원주로 남하하는 영서 축 통로를 동시에 가지게 되어 서울 공략에 매우 유리해집니다. 한편 우리는 병력을 한 곳에 집중시키지 못하고 분산할 수밖에 없어 방어하기 훨씬 힘들어집니다.


6. 북한이 여기를 가지게 되면 경원선 라인과 영서지방에서 황해도, 평양으로 직으로 가는 통로를 찾게 되며 이는 황해도와 강원도 간 동서 연결이 원활해져 군사적으로 매우 유리해집니다.


7. 우리가 여기를 가지게 되면 중부전선에서 북한의 남침을 한 곳에 모아 막을 수 있는 엄청난 장점이 있으며 유사시 북진할 경우 동시에 원산 방면과 황해도 방면으로 진출할 수 있습니다.

-> 북한 입장에서 여러 경로를 동시에 활용할 수 있던 38도선 시절과 달리 지금은 중부지역에서 남침할 수 있는 방법은 철의 삼각지대를 뚫는 것이 유일합니다.


실제 이 곳을 우리에게 빼앗긴 북한과 중공은 군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철원평야를 다시 되찾기 위해 38도선 원상복귀를 강하게 주장했으며 이는 대한민국에서 사실상 방어할 수 없는 개성 시내와 개풍, 연안반도, 옹진반도를 돌려주는 대가로 철의 삼각지대는 물론 피의 능선, 단장의 능선, 파로호, 펀치볼, 백암산, 향로봉 등 38도선 이북의 경기 북동부와 강원도의 주요한 군사적 요충지들을 모두 되찾겠다는 속셈이었습니다.


유엔군은 당연히 이 제안을 거절했으며 다음으로 공산측은 연안반도와 옹진반도만 양보해서 돌려줄 테니 철의 삼각지대를 포함한 38도선 이북 중동부 지역의 여러 요충지들을 돌려 달라고 제안했으나 역시 유엔군은 거절했습니다.


결국 공산측은 마지못해 현 접촉선을 군사분계선으로 하는 것에 동의했으며 이로 인해 철의 삼각지대의 반 이상을 대한민국이 수복하였고 드넓은 철원평야의 대부분을 우리가 활용할 수 있게 됩니다.


현재는 평강고원만 북한이 소유하고 있으며 이로 인해 북한은 황해도와 강원도 간 동서 연결이 매우 어려워졌으며 실제로 안협과 평강 간 통로는 군사분계선에 매우 가깝게 붙어 있으며 백마고지에 의해 감시당해 이용 불가능하며 평강-이천-지하리-신계 통로는 험한 마식령/아호비령 산맥을 뚫는 경로라 활용 가치가 낮습니다.

-> 그래도 평강고원은 북한에게 남아 있어 황해도-강원도 간 연결이 어렵기는 해도 가능한 상태이며 만약 평강고원까지 빼앗겼으면 평양원산선 이남에서 황해도-강원도 연결은 완전히 차단되며 평양원산선도 위협받을 가능성이 높았습니다.


다만 북한은 고암산, 오성산, 삼각고지, 어은산 등 몇 고지들을 끝까지 사수하였고 (특히 오성산은 김일성과 모택동이 무조건 필사적으로 사수하라고 명을 내릴 정도였으며 여기를 넘겨주게 되면 군사분계선 자체가 수십km나 뒤로 밀리게 된다며 조선 역사에 오명을 남길 것이라고 했음) 이로 인해 38도선에 비해 군사적으로 많이 불리해졌지만 그래도 방어가 가능합니다.

-> 단 전선 결절점이 대한민국 쪽에 비해 더 적으며 이는 고지 한두개만 빼앗겨도 우리에 비해 더 전선이 많이 밀려나게 됨을 의미합니다.


아래 사진은 철원, 김화 지역 군인들이라면 다들 모를리가 없는 오성산입니다. 소이산에서 북동쪽으로 멀리 웅장하게 보여 존재를 모를 수가 없는 산이며 왜 김일성과 마오쩌둥이 무조건 사수해야만 한다고 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 실제로 오성산을 우리가 빼앗았으면 회양, 평강고원, 금성, 창도 일대를 전부 감제할 수 있게 되고 그럼 전선은 추가령-철령 선까지 단숨에 올라갈 수 있었다는 점에서 더욱 아쉬운 부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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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면에서 철원평야를 가져온 건 정말 다행인 일이었습니다. 제 외조부님도 백마고지 전투에 참전하셨다고 합니다. 밑에 건 그때 받으신 기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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